2012. 4. 5. 한국자원봉사관리협회

월례 독서모임 [공부하는 삶]으로 초대합니다.

이달의 책, 마이클 에드워드의 [시민사회]

한국자원봉사관리협회에서는 매월 [공부하는 삶]이라는 독서모임을 가집니다. 자원봉사현장의 CEO로서, 실무자로서, 리더로서 살아나가며 무수한 사업과 관계속에서 활동하는 가운데 지치지 않고 힘을 얻을 수 있도록 같이 '공부'하고자 합니다. 제대로 된 '공부'를 함으로써 자신과 현장에 변화의 추동력을 주고자 하는 분을 환영합니다. 

이달의 책은 마이클에드워드의 [시민사회]입니다. 북마스터들이 격물치지, 거경궁리, 지행합일의 흐름에 따라 함께 나눌 수 있도록 안내합니다. 우리가 단지 '공부'를 또 하나의 욕망으로 갈구하고 지식을 축적하거나 소비하려고 애쓸 것이 아니라 현장과 우리의 삶을 풍부히 할 수 있도록 생생하게 생산을 해 내는 장이 되고자 합니다. 

[개 요] 
* 일시 : 2013년 4월 26일(금) 19:00~21:30 
* 장소 : 서울시자원봉사센터 교육장(명동역 1번 출구)
* 참가비 : 4,000원 (식사하실 분만)
* 이달의 책 : [시민사회] 마이클 에드워드
* 북마스터 : 박윤애(서울시자원봉사센터장), 
                양세진(소셜이노베이션그룹 대표) 등 관리협회 운영위원 
* 참가신청 : 천 희 사무처장 (010-2706-1295), kavm@hanmail.net
* 다 못읽으셨더라도 책은 반드시 지참하고 오시면 좋겠습니다. 

[진행일정] 
18:00~19:00 식사 및 친교 
19:00~19:10 오리엔테이션 
19:10~19:50 격물치지(格物致知): 책이 말하는 핵심 
19:50~20:30 거경궁리(居敬窮理): 내가 깨달은 이치 
20:30~21:30 지행합일(知行合一): 삶과 현장에의 적용
21:30~22:00 뒷풀이

책소개

가장 엄격하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새로운 시민사회를 구상합니다.

저자는 냉정하고도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시민사회는 민주주의 덫인가 희망인가?” 서로 통일될 수 없는 이념들과 의문투성이 가설들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시민사회 개념을 명료화하면서, 거버넌스 시대를 준비하는 대안으로서 시민사회가 거듭나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여러가지 상이한 학파의 시각을 분석하고 종합해 주면서, 시민사회란 성취해야 할 하나의 목표(좋은 사회)인 동시에 그 목표에 이르는 하나의 수단(결사적 삶)임을 보여준다. 또한 이 목표와 수단을 서로 연계시키는 하나의 틀(공공영역)이어야 함을 주장한다. 물론 이론적 논의들에 기초하여 시민시회가 무엇을 혁신해야 하는지 덧붙이고 있다. 


시민사회를 둘러싼 왜곡과 오해들을 명쾌하게 풀어줍니다.
시민사회는 민주주의 척도인가?  흔히 시민사회가 약하면 신뢰와 협동 등의 사회적자본이 약해진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강력한 시민사회가 민주주의를 보장하지는 않는다.과연“모든 자발결사체는 그것의 성격이 어떠한지와 상관없이 모두 사회의 민주화에 기여하는가?” 히틀러의 등장 기간 동안 독일(바이마르공화국)의 시민집단들 활동은 매우 왕성했지만 시민단체가 민족주의자, 인민주의단체, 그리고 나치당에 기울었으며, 결국 왕성한 시민사회가 나치로 하여금 역동적인 정치 기제를 재빨리 창조하도록 도와준 셈이었다.현대에 와서도 과연 독일의 신(新)나치 스킨헤드 집단이나 미국의 KKK, 이태리나 러시아의 마피아를 민주화에 기여한다고 볼 수 있을까? 또한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각종 이익단체나 로비집단으로 인해 오히려 민주주의가 질식되는‘민주경화증(demosclerosis)’을 우려하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시민사회의 발전은 국가의 쇠퇴를 의미하는가?
그렇지 않다.“아무리 좋은 이웃이라도 좋은 정부를 대신할 수는 없다.”좋은 정부의 역할은 중요하며 한편으로 국가는 건강한 시민사회를 발전시키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해야한다. 국가가 비정부 부문의 활동을 위해 분명하고 효과적인 법규를 제정하고, 비영리단체의 재정확보를 위한 면세조치를 마련하며, 투명한 집행절차를 거치는 등등 국가의 역할도 중요하다.저자는 건강한 시민사회를 위한 전제조건인 불평등성을 해소하기 위한 국가의 적극적인 노력을 강조한다

NGO는 과연 시민사회의 핵심인가?
우리 사회에서 ‘시민사회’라는 용어는 흔히 NGO라고 불리는 시민단체들의 총합으로 이해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매우 협소한 개념이다. 에드워즈는 시민사회를 “제3섹터 혹은 비영리섹터로 불리는 공간”으로 정의하면서 이 공간에 포함될 수 있는 항목들로 “국가와 가정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자발적 결사체와 네트워크들”, 즉 “공식 등록된 모든 다양한 성격의 NGO들을 비롯해 노동조합, 전문 비즈니스 집단, 공동체 자조집단, 사회운동 독립미디어 등”과 같은 것들을 추천하고 있다. 

- 출판사 제공 서평에서 발췌

독서코너 제목 이해를 위한 친절한 안내 : 격물치지

격물치지(格物致知) 

혹자가 주희에게 물었다. ‘사물을 궁구(格物)하는 것은 사물마다 궁구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의 사물만 궁구하면 만 가지 이치를 다 알 수 있는 것입니까?’ 주희가 대답하였다. “어찌 곧바로 관통할 수 있겠는가? 한 가지 사물만 궁구하면 모든 이치를 알 수 있는 경우는 현인이라고 해도 감히 이렇게 말하지는 못할 것이다. 오늘 하나의 사물에 나아가 궁구하고 내일 또 하나의 사물에 나아가 궁구하여 쌓이고 익힘이 많게 된 뒤에야 확 벗어나듯이 저절로 관통하는(致知) 곳이 있게 된다.”

주희가 말했다. ‘격물(格物)’에 대한 설명에서 ‘격(格)은 이르는 것(至)이다. 사물을 궁구해서 사물에 이르게 되면, 사물의 이치를 다할 수 있게 된다’라고 하였다. 사람들이 사물을 구비하고 있으면서 사물의 이치를 밝히지 못하면 사물에 마땅하게 대처할 수 없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 사물에 나아가 앎을 구해야 한다. 그러므로 격물의 공부를 통해 반드시 지극한 경지에 이른 뒤에야 그친다.“

“궁리에 힘쓴다는 것은 천하 만물의 이치를 모두 궁구하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또 하나의 이치를 궁구해 얻으면 곧 통한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거듭 많이 쌓이게만 되면 저절로 그 이치를 보게 된다.”

주희가 말했다. “오늘날 박식에만 힘쓰는 이들은 천하의 이치를 모두 다 알고자 하고, 요약에만 힘쓰는 이들은 자신에게 돌이켜 참되면 천한 만물의 이치가 모두 나에게 있다고 말한다. 이는 모두 옳지 않다. 오직 거듭 쌓아 관통하게 된다는 말이 오묘하다.” - 주희, [근사록(近思錄)] 중에서

독서코너 제목 이해를 위한 친절한 안내: 거경궁리

거경궁리(居敬窮理)

“경(敬)이란 어떻게 힘써야 하는 것인가?” 정신을 통일하여 흐트러짐이 없는 것이라 하기도 하고, 또 몸가짐을 가지런히 하고 마음을 엄숙히 하는 것이라고도 한다. 

‘거경(居敬)이란 항상 경계하여 깨달으려는 마음의 방법이며, 그 마음을 단속하여 한가지의 잡념도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경(敬)이란 한 마음의 주재이며, 만사의 근본인 것이다. 

궁리(窮理)란 거경에 의하여 사물을 밝히고 앎을 투철히 하여 사물의 이치를 모두 궁구하면 이것이 이른바 덕성을 높이고 학문을 일삼는 것이다. 경에 의하여 뜻을 진실히 하고 마음을 바로잡아 자신의 몸을 닦으면, 이것이 이른바 “자기 자신을 닦아서 백성들을 편안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상의 모든 것이 다 하루라도 ‘경’을 떠나서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찌 경이라는 한 글자가 성인의 학문의 시작과 끝맺음의 요체가 아닐 수 있는가. 

퇴계 이황, [성학십도(聖學十道)] 중에서

독서코너제목 이해를 위한 친절한 안내 : 지행합일

지행합일(知行合一)

참된 지(知)는 그것을 행(行)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행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안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이는 학문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가르침이 되는 것이니 학자들에게 그대로 행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참된 행이 바로 지라고 한다면 학자들이 오로지 본심만을 추구하고 사물의 이치를 버릴까 걱정됩니다. 그렇게 된다면 필시 어느 한 쪽에 치우쳐서 깨닫지 못하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지의 적절하고도 독실한 점이 바로 행이요, 행함에 있어서 밝게 짐작하고 정확하게 살피는 것이 바로 지입니다. 지와 행의 공부는 원래 분리시킬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만 후대의 학자들이 지와 행을 둘로 나누어 공부하고 그 본체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지행을 합일시키고 함께 전진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참된 지식이란 실행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실행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지식이라 할 수가 없습니다. 

예전의 학자들은 ‘사람이 배움에 있어서는 마음과 이가 있을 뿐이다. 마음은 비록 몸이 지배하는 것이지만 실제는 천하의 이를 통솔한다. 이는 비록 만사에 흩어져 있지만 실제로는 한 사람의 마음을 떠나지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마음과 이를 나누었다 합쳤다를 하며 설명했기 때문에 후대의 학자들이 마음과 이를 두 가지로 나누어 보게 되었고, 이 때문에 지식만을 추구하고 행동을 포기하는 폐단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행동과 지식이 마음속에서 하나인 것을 이것을 망각하고 마음을 떠나서 사물의 이치를 추구했기 때문에 한쪽에 치우쳐 참된 이치를 깨닫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어찌 행동을 떠나서 참된 지식을 추구할 수가 있겠습니까? 지와 행을 두 가지로 분리시키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바로 지행합일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왕양명, [전습록(傳習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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